평산 신씨 문희공파 사간공파 족보 시조 조상 항렬 돌림자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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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 신씨의 시조는 신숭겸으로, 그는 고려 태조 왕건을 왕위에 오르게 한 네 명의 개국공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다만 그가 어떻게 궁예가 세운 태봉국에 들어가 무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 기록에 명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신숭겸이 본래 양민, 즉 농민 출신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활을 잘 쏘고 무예에 뛰어났다는 점만큼은 확실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받게 된 과정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느 날 왕건이 장수들과 함께 평주, 즉 지금의 평산 지역에서 사냥을 나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자 왕건이 “누가 저 기러기를 맞힐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신숭겸이 앞으로 나와 “지정하시는 새를 쏘아 반드시 떨어뜨리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왕건이 웃으며 세 번째 기러기를 가리키자, 신숭겸은 활을 당겨 정확히 그 기러기를 맞히고 떨어뜨렸습니다. 이를 본 왕건이 크게 감탄하여 그에게 토지 300결과 더불어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신숭겸은 이후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에 왕건은 그의 충절을 기려 삼중대광 태사 개국공신에 추봉하고, 시호를 장절이라 내렸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 신보장을 원윤으로 임명하여 가문을 예우하였으며, 매년 팔관회가 열릴 때마다 신숭겸과 함께 순절한 김락 등 공신들의 형상을 만들어 기리도록 하였습니다.

신숭겸의 후손 가운데 11세손인 신연의 아들 세 형제에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장남 신중명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차남 신자명은 춘천부사를 지냈고, 삼남 신헌주는 상호군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들 형제를 통해 가문은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신중명의 아들 신집은 전리판서를 거쳐 수문관 대제학에 이르렀고, 그의 동생 신군평은 공민왕 때 좌대언과 어사대부로 활동하였습니다. 또 막내 신현은 대학자로서 학문과 덕망을 널리 떨쳤습니다.
신집의 아들 신안은 판관을 지낸 뒤 종부시령까지 올랐으나, 고려가 멸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평산의 황의산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습니다. 그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신개는 조선 초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 좌찬성, 그리고 우의정에까지 올랐습니다. 또한 우참찬으로 재직할 때는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여 역사 정리에 기여하였습니다. 그는 세종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고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누리며, 충절과 학문, 그리고 정치적 업적을 함께 남겼습니다.